월례강연2월 월례강연 2024 전쟁위기 속 다시 읽는 한국전쟁(24.02.22)

202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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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준 박사와 함께한 2월 월례강연

 2024 전쟁위기 속 다시 읽는 한국전쟁

-남북관계의 정치학과 한국전쟁

 

1950년 6월 발발한 한국전쟁은 어떤 맥락에서 발발했고, 한국전쟁 성격은 무엇으로 봐야하는가? 에 대한 교육이었습니다. 6.25전쟁으로 불리는 한국전쟁은 내전, 국제전, 대리전, 조국해방전쟁, 침략전쟁 중 무엇이었을까요? 전쟁 성격을 규정하기 전에 왜 발발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성찰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남북관계의 정치학

남과 북이 싸우지 말고 두 나라로 평화롭게 지내자는 주장은 매우 보편적이고 타당한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평화적인 두 국가> 불가능하다. 분단체제 자체가 적대성을 내포하고 있다. 분단이 된지 2년이 채 되지 않아 전쟁이 터졌다. 이 자체가 분단이 평화적으로 관리되기 어려운 속성을 보여준다.

  




한국전쟁 시작을 언제로 봐야 하나?

박명림 교수의 책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에는 1948년 남과 북이 주장하는 충돌 횟수를 담고 있다. 어느 쪽 주장이 타당한가를 떠나  당시 군사적 충돌이 얼마나 빈번하게 발생했는지는 알 수 있다.  




전쟁의 당사자와 정전협정

 정전협정의 공식 명칭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이다.  한국전쟁을 미국과 중국의 전쟁 혹은 남과 북의 전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정전협정 서명 당사자만 보아도 이 전쟁은 미국과 북한의 대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은 중국군이 아닌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이 서명했다.

이승만 정부는 ‘북진’을 주장하며 정전협정 체결에 찬성하지 않았다. 한국군의 모든 작전지휘권은 미군사령관에게 넘겨졌고, 작전지휘권이 없는 한국군은 서명 주체로서의 자격이 없었다.

 

한국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정전협정은 오직 군사적 교전을 중지하는 것만 약속하고 있다. 평화협정이라는 정치협정을 맺어야만 끝나는 것이다. 정전협정은 3개월 안에 한 급 높은 정치회담을 열어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와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협의하기로 합의했다. 그 결과 열린 것이 1954년 제네바 회담이었다.

1954년 4월 26일부터 6월 15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료하기 위한 회담이 열렸다. 그러나 제네바 정치회담은 어떤 합의점도 끌어내지 못한 채 종료되었다.

 

냉전이후 남북이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기 위한 노력과 합의들이 있었다.

2007년 10.4 선언에서 최초로 합의하였다.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2018년 4.27 판문점선언에서는 종전을 선언하기로 약속했다.

“남과 북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 합의는 이행되지 못했다. 정전협정 70년, 그렇게 한반도는 가장 긴 전쟁을 치르고 있다.

 

또다시 전쟁

지난 3월 한미 양국은 이틀을 빼고 매일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2023년 미국의 전략무기는 한반도에 12차례 전개되었다. 전략자산은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무기를 말한다. 지난해 5월 21일 정부 출범 11일 만에 한미 정상회담을 열고 전략자산 전개를 합의했다. 이후 한미 양국은 지금까지 전략폭격기, 전투기, 항공모함 등 전략자산이 참여하는 훈련을 수십 차례가 넘게 진행했다. 7월 중순에는 미 해군 핵잠수함이 부산항에 입항했다.

북한은 미국의 전략무기가 한반도에 전개될 때마다 이를 격추하는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의 정찰기가 자신들의 영토를 침범한다면 격추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며 신형무기들로 대응하고 있다. 언제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북한은 지난해 핵정책을 법으로 채택했고 그것을 공개했다. 북한의 핵 공격은 선제공격까지 포함한다.

1949년 이승만 정권은 ‘북진 통일’을 주창했다. 북한 정권 타도를 공공연하게 추구했다. 38선 인근에서는 크고 작은 군사적 충돌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그리고 1950년 6월 25일, 전면전이 시작되었다. 압도적 전쟁준비를 주장하는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상황은 1949년과 비슷하다. 그때 북진통일은 지금 자유의 북진이 되었다.

전쟁은 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전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끝.